【2026.09.25】
팬미팅 카운트다운 D-1
온앤오프의 퍼포먼스에 매료되고,
토크에 위로받고 있는 지금,
최고의 기분♬
퓨즈 여러분은 온앤오프의 매력을 건져 올리는 데 정말 능숙하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온앤오프를 보여주신다.
그 감각과 사랑에,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주말.
일본에서의 팬미팅.
제대로 눈에 새겨두고 싶다.
온앤오프에게 ‘응원법’으로도 힘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응원법을 외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서,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나의 ‘기억 서랍 문제’.
내 기억의 서랍은 좀처럼 만만하지 않다.
분명 넣어두었다고 생각한 정보가, 어느새 길을 잃는다.
서랍 자체를 찾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누군가 힌트를 주어야 비로소
“아, 그랬지!”
하고 발굴된다.
마치 지층 깊숙한 곳에서 화석을 캐내는 기분.
아마 외울 수 있는 응원법은 한 곡이 한계일 것이다.
그래도, 그 한 곡만큼은 온 힘을 다해 전하고 싶다.
온앤오프와 퓨즈의 아름다운 소리의 물결에,
나 자신도 포개어지고 싶다.
이제 곧 내가 향할 곳은,
환희에 둘러싸인 곳.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며,
도취되는 곳.
나답게,
거울을 바라본 뒤,
그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소설이라는 거울
『인 더 메가처치』 아사이 료 지음.
2026년 서점대상 수상작.
발행 부수 50만 부를 넘어선 대히트 소설.
한국어판도 출간되어 있다.
덕질을 만들어가는 사람.
덕질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
덕질에서 빠져나온 사람.
흔들리는 마음과,
세 사람이 각자 선택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내게는 퓨즈 역시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 역시 퓨즈의 한 사람으로서,
온앤오프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내 안에 ‘두렵다’는 감정이 생겨난 것은,
무의식중에 꾹 눌러두었던 목소리가 언어가 되어,
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알게 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억눌러두었던 속삭임.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아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중얼거림.
가두어두었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온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모른다.
새삼스럽게,
그렇게 생각한다.
억눌려 있는 수다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내가 살고 있다.
수많은 작은 사람들.
작은 사람들은 말을 참 많이 한다.
“좀 더 이렇게 하고 싶어.”
“이대로 휩쓸려도 괜찮은 걸까?”
각자 자기주장을 한다.
서로 반대되는 것,
모순되는 것들을 놓고 다툰다.
‘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속삭이는 작은 사람도 있다.
그 목소리가 커지면,
마음속은 질척질척, 뒤죽박죽.
모른 채로 있을 수 있다면 평화롭다.
이 목소리를 억누르면 평온하다.
그래서 작은 사람들을 가둔다.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모르고 있는 것.’
그것은 어쩌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어느새 익혀버린 방법인지도 모른다.
모르면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
모르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면 마음이 가볍다.
질척질척한 내 목소리에 실망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뚜껑을 덮는다.
하지만, 잠깐.
좋아하는 것을 거울 삼아,
나 자신을 바라보자.
——지금 내가 거울로 삼고 있는 것은,
소설 속에 그려진 이야기.
주인공의 목소리와,
내 안에 있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 속삭임은,
같아?
비슷해?
달라?
눈을 감고 바깥세상에서 조금 떨어져 본다.
바깥을 향하고 있던 의식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본다.
그게 정말 추한 걸까?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추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모르는 것이 두려울 뿐인지도 모른다.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 속삭임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욱더,
의식을 나 자신에게로 향해본다.
또 다른 무언가가 들려온다.
또 다른 작은 사람의 목소리.
그 작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하려고,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더 커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누군가와 이어지려 한다.
그 목소리는 세계를 만든다.
In the Megachurch
“Megachurch(메가처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대한 규모의 교회.
“In the(인 더)”에는
‘스스로 선택하여 그곳에 서 있다’는
자부심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런 설명을,
작가의 말로 접한 적이 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이 제목이 더욱 깊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곳에는 진심의 힘이 있다.
‘믿는다’는 진심의 힘.
메가처치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공간’은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교나 사회, SNS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커뮤니티와도 닮아 있다.
같은 스토리를 공유하고,
그 흐름에 편안하게 몸을 맡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길잡이를 받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음악에 마음을 맡기는 편안한 시간과 공간.
그 커뮤니티 안에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다’라고
안심할 수 있다.
나에게는,
일상과는 다른 축 위에 있는,
확실한 위로.
나는,
온앤오프와 퓨즈가 모이는 곳에 있다.
온앤오프의 진솔한 모습이
우리를 웃게 한다.
이 커뮤니티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곳.
나도,
인 더 메가처치.
그래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나는 메가처치에 있다.
이곳에서 구원받고 있는 내가 있는 한편,
그럼에도 계속 흔들리는 나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고독을 견디며 살아가는 나.
그 또한,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아는 사람만 알면 되지.”
그렇게 단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작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외친다.
“포기하자”고 속삭이는 목소리.
“다른 하고 싶은 것도 있잖아”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지워버리려는 듯.
나는 계속 신기루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기루는,
예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아름답게 떠오르고 있다.
그 곁에서,
함께 춤추고 싶다.
그리고,
기뻐하고 싶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믿으며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듯한 고독감.
이 현실이,
나를 깊이 상처 입힌다.
나쁜 꿈이다.
책임
멋진 아이돌은 다른 곳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온앤오프는 다르다.
온앤오프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 표현의 태도가,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표현을 그저 ‘유행’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좀 더 깊이,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좋아하니까 본다.
좋아하니까 듣는다.
좋아하니까 기다린다.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어디로 향하려 하는지.
그 세계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온앤오프를 사랑하는 나는,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게는 책임이 있다.
온앤오프의 음악이 세계를 만든다
나에게 온앤오프의 음악은
다른 음악과는 한 차원 다르다.
내 안에 아직 사용해 본 적 없는 회로에
직접 플러그를 꽂는 듯한 충격.
그들이 표현하는 세계에,
내 안에 숨어 있던 작은 사람들이 공명한다.
그 충격은 눈물이 되어 흘러넘친다.
몸의 떨림이,
다시 마음을 뒤흔든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근원’을 자극한다.
변해가는 나에게 곁을 내어주는 음악.
변해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음악.
변해가는 나를 치유하는 음악.
온앤오프는 세계를 표현한다.
그래서 그 음악은,
어떤 나의 영혼에도,
어느 때의 나의 영혼에도,
공명하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도,
수백 번을 계속 들어온 지금도,
내가 느끼는 온앤오프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깊은 감정의 근원을 받아들여,
그것을 소리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표현은,
몇 번이고 감동하게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감동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온앤오프를,
나는 단지 ‘아티스트’라는 말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영혼을 공명시킨다.
말이 되기 전의 감정을 흔들고,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 불러낸다.
음악은 형태가 없는데도,
사람의 마음을 직접 흔든다.
때로는,
나조차 몰랐던 나 자신과 만나게 해준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마음속에 그려보게 한다.
그것이,
내가 느끼는 ‘음악의 본질’.
고독을 짊어지고서라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계를 형태로 만들어낸다.
그 음악을 연주하는 존재——
그것이,
온앤오프다.
빛을 받는 자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자로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그 문은,
자신의 손으로만 열 수 있다.
온앤오프가 개척하는 문 너머에는,
따스함에 둘러싸인 곳이 아니다.
다정하게 보호받는 곳도 아니다.
그곳은,
춥더라도 자기 자신의 진실과 마주하며,
빛을 만들어내는 곳.
그림자——억눌러두었던,
또 다른 나 자신과 마주하고,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곳.
온앤오프의 메가처치는,
스튜디오가 되기도 하고,
아틀리에가 되기도 하고,
연구실이 되기도 하고,
실험실이 되기도 하고,
서재가 되기도 하고,
방송실이 되기도 한다.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는 다르다.
바라보고 있는 사람 자신이,
세계를 만들어낸다.
주어지는 자에서,
창조하는 자로.
빛을 받는 곳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함으로써,
빛은 태어난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
내가 믿고 있는 스토리.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보다
“아는 사람만 알면 되지.”
그렇게 단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다시 나는,
소설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때로는 시야를 꽉 좁혀 한곳에 집중하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 나.
내가 만든 이야기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
그 이야기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나.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온앤오프가 있고,
우리 퓨즈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이곳이 있다.
나는,
이곳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글로 온앤오프를 덕질하는 퓨즈.
그런 나 자신을,
조용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얼마나 더 괴로워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림자를 바라보면, 빛은 아름답게 빛난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 목소리는,
내 안의 작은 사람이 속삭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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